우리 아이는 원래 채소를 안 좋아 한다는 편견, 태어나면서부터 기질이 입맛이 까다롭다는 편견이 많은 부모들이 편식을 아이의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최근 식습관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편식은 유전보다는 환경과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습관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생후 6개월부터 유아기까지의 먹는 경험, 가족의 식사 분위기, 부모의 태도, 감정적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아이의 식습관을 결정짓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이가 편식하게 되는 심리적 이유와 그 과정을 통해 왜 편식은 고칠 수 있는 습관인지 그리고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접근법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보려 합니다.
1. 아이는 맛보다 경험을 기억한다
편식은 단순히 맛이 없다는 이유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는 아직 미각 경험이 적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특정 음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대부분 그 음식과 함께한 부정적 경험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를 처음 먹었을 때 억지로 먹게 하거나 혼나는 경험을 했다면 아이는 브로콜리는 불쾌한 감정으로 연결 지어 기억하게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부정적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그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지속시키는 심리적 이유가 됩니다. 이 과정을 조건 형성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아이는 음식 자체보다 부모의 표정, 말투,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엄마가 한숨을 쉬거나 이거 안 먹으면 안 돼라는 말과 함께 음식을 주면 아이는 그 음식을 압박과 통제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편식은 맛보다 감정의 기억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좋은 음식이니 먹어야 해라는 식의 이성적 접근보다는 음식과 함께하는 경험의 감정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편식은 제어의 싸움이 될 때 고착된다
부모와 아이 사이의 편식 갈등은 종종 식습관이 아닌 관계의 문제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아이는 식탁 위에서 자기의 통제권을 실현할 수 있는 드문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자신의 선택이 존중받지 않을 때 아이는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자율성을 주장하는 심리적 행동을 보입니다. 실제로 아이가 음식을 거부할 때 그 행동은 단순한 입맛 문제가 아니라 자기 주장을 실현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가 음식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강요하면 아이는 방어적으로 더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 상황은 반복되면서 음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편식이 습관으로 굳어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권력 투쟁으로 봅니다. 즉 식탁이 음식 중심이 아닌 권위 중심으로 흘러갈 때 아이는 편식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식을 고치기 위해서는 음식을 제어 수단으로 삼는 방식을 피하고 아이에게 선택과 자율의 여지를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처는 음식에 대한 결정을 함께 하거나 아이가 선택한 음식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떤 채소를 먹고 싶다거나 이 중에서 두 가지 골라볼래 처럼 스스로 선택했다는 느낌을 줄 때 아이는 음식과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3. 식습관은 심리적 안정감 위에서 자란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로 안전감과 예측 가능성을 꼽습니다. 이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사 시간이 긴장되거나 불쾌한 시간이 되면 아이는 식탁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반대로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식사할 경우 아이는 새로운 음식에도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특히 부모가 스트레스를 느끼는 식탁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에 부모가 편식에 예민하게 반응할수록 아이는 식사와 긴장 이라는 감정을 내면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부모가 느긋하고 유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식습관 개선의 출발점이 됩니다. 음식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하루 한 끼가 안 먹혔다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 그리고 오늘은 맛만 봐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여유가 오히려 편식을 줄이는 효과적인 심리적 접근법입니다. 또한 아이가 식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식사 환경을 정돈하고 TV나 스마트폰 없이 온전히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먹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자연스럽게 음식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워갑니다. 편식은 고칠 수 있는 심리적 습관입니다
편식은 절대 성격 탓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복된 경험, 감정, 가족 분위기, 통제 방식 속에서 만들어진 습관입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편식하는 아이였던 것이 아니라,그렇게 길러졌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은 강요하거나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맛과 감정을 존중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유연한 태도, 반복된 긍정 경험, 안정된 식사 환경이 어우러질 때 아이는 어느 순간 조금씩 입맛을 넓혀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편식은 고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함께 바꿔갈 수 있는 생활의 일부입니다. 아이와 함께 식탁 위 작은 변화를 만들어보세요. 변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됩니다.